이 산 위의 평평한 고지대는 아타얄족 사람들의 마을이었으며, 훗날 한 지도자가 별장을 지은 곳이기도 합니다. 자오반산(角板山)은 다한시(大漢溪)를 내려다보는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에는 산지를 다스리기 위한 거점이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전후, 이곳에는…
이 산 위의 평평한 고지대는 아타얄족 사람들의 마을이었으며, 훗날 한 지도자가 별장을 지은 곳이기도 합니다.
자오반산(角板山)은 다한시(大漢溪)를 내려다보는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에는 산지를 다스리기 위한 거점이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전후, 이곳에는 장제스(蔣介石)의 행관, 즉 별장이 세워졌습니다. 대륙 고향의 풍경과 닮았다 하여 이곳을 좋아하였고, 자주 머물렀다고 전해집니다. 행관의 흔적은 지금 공원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 일대의 이름인 푸싱(復興) 역시 그 시대에 붙여진 것이라 합니다. 대륙을 되찾겠다는 염원이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같은 고지대에는 지금도 아타얄족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산 위에, 선주민의 오랜 시간과 전후 정치의 시간이 겹쳐져 있는 것입니다.
장제스에 대해서는 대만을 지키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오랫동안 계속된 계엄령과 정치 탄압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있어,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고지대의 가장자리를, 골짜기에서 올라온 바람이 스쳐 지나갑니다.
같은 풍경을 아타얄족 사람들은 고향으로 바라보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겹쳐 바라보았습니다.